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한국어 (문단 편집) === 주격조사 '가'가 없었다 === 15-16세기 중세국어에서는 주격조사를 대체로 이, ㅣ, ∅ 로 썼다. '이'는 현대국어처럼 주어가 자음으로 끝날 때 사용되었으며 'ㅣ'(딴이)는 주어가 '이[ㅣ], ㅣ[j]' 외의 모음으로 끝날 때 사용되었다. 마지막의 ∅는 표기 자체를 않는다는 의미로 체언이 '이[ㅣ], ㅣ[j]'로 끝났을 때 사용했으며, 제로 주격 조사라고 부르기도 한다. '이[ㅣ], ㅣ[j]' 뒤에도 여타 모음 뒤와 마찬가지로 'ㅣ'를 덧붙여 'ퟄ'로 쓸 법도 했지만 그냥 있는 '이[ㅣ], ㅣ[j]'를 장음으로만 발음하고 따로 표기하진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. 주격 조사 '이'가 'ㅣ'(딴이)'로 바뀌는 것은, __단모음 충돌 회피 현상__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, 우선 표기에서의 '이, ㅣ'는 각각 발음상의 [ㅣ, j]임을 알아 두자. '이'의 초성 'ㅇ'은 이 자리에 자음이 올 수 있음을 의미하므로 '이'는 발음상 단모음 [ㅣ]이다. 한편 '딴이'로 불려 온 'ㅣ'는 초성 'ㅇ'을 달고 있지 않으므로 다른 단모음 바로 뒤에 이어지는 반모음 [j]를 나타낸다. 즉 중세 국어에서 끝에 'ㅣ'를 달고 있는 [ㆎ, ㅢ, ㅚ, ㅐ, ㅟ, ㅔ] 등은 모두 [ʌj, ɨj, oj, aj, uj, əj]와 같은 하향 이중 모음이었다. 국어에서는 단모음이 이어진 상태를 피하고자 두 단모음 중 하나가 반모음으로 바뀌는 현상이 있다. (e.g. 이기- + -어 → 이겨)[* 종래엔 [ㅣ + ㅓ → ㅕ\]를 모음 축약으로 설명했으나, [ㅕ\]는 [j + ㅓ\]로 이루어진 이중 모음이므로, 앞선 단모음 [ㅣ\]가 반모음 [j\]로 바뀐 교체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.] '이[ㅣ], ㅣ[j]' 외의 모음 뒤에 '이[ㅣ]'가 이어지면, 단모음끼리 충돌하게 되므로 뒤의 '이[ㅣ]'가 반모음 'ㅣ[j]'로 바뀌는 것. 예) 부텨[pu.tʰjə] + 이[i] → 부톄[pu.tʰjəj] 현대국어처럼 주격조사 '가'가 사용된 것은 16세기 후반-17세기에 이르러서다. 이 시기 선행 체언의 말음이 단모음 '이[ㅣ]'이거나 하향 이중 모음 끝의 반모음 'ㅣ[j]'인 경우, 주격 조사 '가'가 차츰 쓰이기 시작했다. [[정철]]의 모친인 죽산 안씨(1495~1573)의 언간에서 문헌상의 주격 조사 '가'가 처음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으나, 뒷말 '가세(>가시)'의 '가'일 뿐이라고 보는 이설이 있다. 예) ᄎᆞᆫ 구ᄃᆞᄅᆡ 자니 ᄇᆡ가 세니러셔 / ᄇᆡ 가세 니러셔 ('죽산 안씨'의 언간 中, 1572) 이후 수십 년이 지나 [[첩해신어]]에서 다시 여러 차례 목격되며, 당대인 17세기 언간 등에서도 여러 차례 발견되고 있다.[* 김현주, 2016, 「중세․근대국어 주격조사 연구의 쟁점과 과제」, 『2016년도 국어사학회 여름 전국학술대회』, p.12][* 각종 서적에서 '주격조사 '가'가 가장 처음 발견된 문헌은 1550년대에 쓰인 [[인선왕후]] 언간이다'라고 되어 있지만, 이것은 큰 잘못이다. 인선왕후는 효종대 사람으로 17세기 초중반에 활동했기 때문이다.] 주격 조사 '가'가 일본어 주격 조사 'が'의 차용이냐 아니냐는 학술적인 논의의 대상이다. 만약 앞서 언급한 죽산 안씨 언간의 '가'가 주격 조사가 아니라면, 주격 조사 '가'는 [[첩해신어]]라는 일본어에 익숙한 왜어 역관 자료에서 가장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는 점과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자기 등장했다는 점에서 일본어로부터의 차용도 논의되는 것이다.[* 이용규, 황선엽 (2021) - 주격 조사 ‘-가’의 일본어 차용설 검토, 국어학] 예) 오ᄂᆞᆯ은 건넘즉ᄒᆞᆫ 구롬 가기도 잇고 (...) 多分 ᄇᆡ가 올 거시니 ([[첩해신어]], 1676) 예) ᄎᆞᆫᄇᆞᄅᆞᆷ을 ᄡᅩ여 두드럭이가 블위예 도다[* 찬바람을 쐬여 두드러기가 볼 위에 돋아] ([[인선왕후]] 언간, [[숙명공주]]에게 보내는 서간, 17세기 중반) 다시 중세국어로 돌아와서, 주격 조사들이 사용된 용례를 따져보면 현대국어에서는 '공자가'라고 쓸 것을 '孔,,고ᇰ,,子,,ᄌᆞ,,ㅣ'처럼 사용했고[* 다만 발음은 [고ᇰᄌᆡ\]로 하지만 '子,,ᄌᆞ,,'는 한자이므로 'ㅣ'와 합쳐서 쓰지는 못했다.], '이[ㅣ], ㅣ[j]' 뒤에서는 영형태로 나타났다. 전자의 경우 지금도 이러한 형태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, 대표적으로 주격 인칭 대명사인 내(나+ㅣ), 네(너+ㅣ), 제(저+ㅣ)가 있다.. 일부 방언에서 아직 쓰임새가 나타난다. 경상남도 남서쪽 끝 지역인 [[하동군]]에서 '[[비녀]]가' 대신 '비녀이~비녀ㅣ'를 사용하는 영상 자료가 있다. 자세한 것은 [[동남 방언/상대 높임법#s-2.2.2|동남 방언/상대 높입법]] 참고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